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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역, 『성종실록』에 소속 변경 기록…1871년 『안기도역지』에도 이름 남아
김태선 기자 · 2026-10-19
4. 각산역
경북 청송군 진보 지역의 옛 교통사를 보여주는 각산역(角山驛)은 조선시대 역참 운영과 역도 개편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다. 『성종실록』에는 각산역이 1471년 안기도(安奇道)에 편입된 사실이 기록돼 있으며, 조선 후기 자료에도 역명이 남아 있다.
『성종실록』 권12의 성종 2년(1471) 윤9월 1일 기사에는 경상도 관찰사의 건의에 따라 송라도에 속했던 영양역·각산역·청운역·문거역·화목역 등을 안기도에 소속시키고, 일부 역은 창락도로 옮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당시 국가가 역의 관할을 조정하며 교통 행정체계를 정비했음을 보여준다.
역도는 여러 역을 묶어 관리하던 조직으로, 각 역은 소속 역도를 통해 운영·관리됐다. 각산역의 안기도 편입은 진보 지역의 역참이 안동을 중심으로 한 교통 행정망에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안기도는 안동의 안기역을 중심으로 여러 역을 관할했다. 이 같은 역참망은 공문서 전달과 관리의 이동을 지원하고, 내륙과 동해안 지역을 잇는 교통체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각산역 역시 이러한 국가 역참 제도 안에서 기능했다.
각산역의 이름은 조선 후기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1871년 편찬된 『안기도역지』 관련 해설에는 안동·의성·영해·청송·진보 등에 있던 역들이 소개돼 있으며, 진보의 역으로 각산역이 기록돼 있다. 이는 각산역이 조선 후기까지 안기도의 역참 체계에 포함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1471년 기록은 각산역의 안기도 편입을 입증하는 자료이지, 역의 최초 설치 연도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기록은 아니다. 진보신역과 각산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연결됐는지, 각산역이 오늘날 진보면 각산리의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는 추가적인 지리지와 읍지, 역참 관련 문헌을 대조해야 밝혀낼 수 있다.
각산역 관련 기록은 청송과 진보가 조선시대 국가 교통망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옛 문헌에 남은 역명과 역로를 조사하고 실제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지역의 교통사와 지명 변천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