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유래
교리 유래 — 다릿골에서 한실까지, 골짜기마다 이어온 삶의 이야기
김태선 기자 · 2026-10-16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의 남동쪽에 자리한 교리는 주왕산 자락의 크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하나의 법정리이자 행정리이며, 다릿골과 한실, 향촌, 남과실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산을 등지고 계곡을 곁에 둔 마을마다 지형과 자연환경, 선조들의 정착 이야기가 지명에 담겨 전해진다.
교리라는 이름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계곡에 놓여 있던 다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다릿골’이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옮겨 ‘교동(橋洞)’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교리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이어졌다.
본래 청송군 부내면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곡과 송생리 남개곡의 각 일부를 합쳐 교동이 되었으며, 청송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79년 청송면이 청송읍으로 승격되면서 청송읍 교동이 되었고, 1988년 군조례에 따라 교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교리의 바탕이 된 다릿골은 깊은 산지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북쪽 고개를 넘으면 거대리로 이어지고, 서쪽 고개를 통해서는 남과실로 통한다. 교리의 이름을 낳은 중심 마을이지만, 남쪽의 큰길인 주왕산로에서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골짜기 안에 집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산촌 마을의 특징을 볼 수 있다.
교리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인 한실은 송생리에서 거대리 방향으로 가다가 한실삼거리에서 주왕산 방면으로 접어들면 만나는 마을이다. 좁은 골짜기를 지나 나타나는 넓고 완만한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다.
한실은 김녕김씨 충정공파의 청송 입향조인 송은공 김확(金確)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확은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을 피해 천안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한실의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한다. 하나는 마을을 개척하면서 만든 연못의 물이 매우 차가워 ‘한천(寒泉)’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골짜기가 넓고 큰 곳에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에 ‘큰 골짜기’라는 뜻의 ‘한실’, 곧 대곡(大谷)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차가운 샘물과 넓은 골짜기라는 두 자연적 특징이 마을 이름에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향촌(香村)은 송생리에서 교리로 들어서는 초입에 자리한 마을이다. 북서쪽으로 들어간 작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었으며, 마을 앞에 수백 년 묵은 향나무가 있어 향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교리의 다른 산간 마을에 비해 초입부의 농경지가 발달해 논농사가 이루어져 온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