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뉴스
청송도호부와 청송향교와의 관계
김태선 기자 · 2026-11-05
청송도호부가 고을의 행정과 통치를 담당한 중심기관이었다면, 청송향교는 유학을 가르치고 선현을 모시며 지역의 인재를 양성한 교육·제례기관이었다. 두 기관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조선시대 지방 통치와 유교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청송향교는 1426년(세종 8) 당시 청송지군사로 부임한 정지아가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처음 건립했다. 청송군이 설치된 지 3년 만의 일로, 청송의 지방행정 체계가 자리 잡던 시기에 교육기관도 함께 설립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임진왜란 때 향교가 불타자 1606년(선조 39) 부사 이영도가 국동에 대성전을 다시 세웠으며, 1629년(인조 7)에는 부사 이문증이 동무와 서무, 강당 등을 보수했다. 이후 1693년(숙종 19) 부사 이문징이 기존 향교의 지세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현재 위치인 청송읍 월막리 방광산 아래로 이전을 추진했다. 1700년에는 부사 이상훈이 청아루를 증축했고, 1869년 부사 윤현기가 대대적인 개수와 보수를 실시했다.
청송향교의 명륜당과 청아루 등 전통 건축물.향교는 조선시대 국가가 설치한 지방 공립 교육기관으로, 당시 교관 1명이 교생 30명을 가르쳤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5성, 송조 2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셨다. 교육 기능은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학교제도가 도입되면서 사라졌지만, 지금도 지역 유림들이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청송도호부 관아가 행정과 통치의 중심이었다면 청송향교는 학문과 예절, 정신문화의 중심이었다. 특히 역대 청송부사들이 향교의 건립과 중건, 이전에 직접 참여한 기록은 두 기관이 긴밀한 관계 속에서 청송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형성해 왔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