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뉴스
청송도호부 관아문헌 고찰에 따른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역사 밝히다
김태선 기자 · 2026-10-30
청송도호부 관아 문헌 고찰을 통해 조선시대 청송의 지방행정 중심지였던 청송도호부의 역사와 관아의 건물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정리됐다.
청송도호부 관아의 동헌과 내아(건물의구조)는 1423년(세종 5년) 청송군이 설치된 이후 1459년(세조 5년)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지방행정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895년 갑오개혁으로 군으로 환원된 뒤에도 관아는 지방행정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남았다. 문헌에 따르면 청송에는 조선왕조에 걸쳐 군사·부사·군수 등 221명의 수령이 부임해 정사를 살폈다.
그동안 청송도호부 관아는 위치 정도만 추정할 수 있을 뿐, 건물의 실체를 확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했다. 그러나 1708년(숙종 34년) 부사 송징태가 관아를 중창하고 남긴 기문이 발견되면서 관아 건물의 종류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관아 관련 기록이 단편적으로 수록된 여러 문헌을 수집·정리해 청송도호부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살펴볼 수 있게 됐으며, 관아의 위치와 건물의 종류, 배치 및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적 토대도 마련됐다. 이는 향후 전통문화유산의 복원·보존 사업과 전문적인 역사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송도호부의 연혁을 살펴보면, 고구려 시대에는 청기현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에는 적선현으로 개칭됐다. 고려 초에는 부이현 또는 운봉현으로 불리다가 986년(고려 성종 5년) 청부현으로 개칭됐으며, 이후 예주(현재의 경북 영덕군)에 예속됐다.
조선시대인 1394년(태조 3년)에는 예주에서 분리 진보현에 합병됐고, 1418년(세종 즉위년) 진보현이 청보군으로 승격됐다. 이어 1423년(세종 5년) 진보를 분리하고 송생현을 통합해 청송군을 설치했으며, 1459년(세조 5년) 청송도호부로 승격됐다.
이후 1895년 갑오개혁에 따른 부·군·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호부 제도가 폐지되고 군으로 환원되면서 오늘날 청송군으로 이어지는 행정체계의 변화를 맞았다.
청송도호부 관아 관련 문헌은 조선시대 청송의 행정과 역사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향후 관아의 구체적인 위치와 건물 구조를 규명하고 지역의 전통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징태 부사의 중창 기록을 분석해 확인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물 기능 및 특징
신민헌(新民軒) 청송도호부 부사의 집무 공간인 동헌
쌍광헌(雙光軒) 동헌을 가리키는 또 다른 명칭
운봉관(雲鳳館)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관리들이 예를 올리던 객사
강무당(講武堂) 군사훈련 시설
장관청(將官廳) 장수들의 집무 공간
부고(府庫) 문서나 재물을 보관하던 건물
관아 터는 현재의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일대이며, 객사인 운봉관은 오늘날 소헌공원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