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뉴스
진보에 들어선 조선의 역참…1395년 신역 설치 기록
김태선 기자 · 2026-10-18
『세종실록지리지』에 남은 옛 교통의 흔적…중앙과 지방 잇는 행정 거점
경북 청송군 진보 지역의 옛 교통사를 보여주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진보현 항목에 등장하는 신역(新驛)이다. 이 기록은 조선 초기 진보현에 역참이 설치돼 국가 교통·통신 체계의 일부로 운영됐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은 하나로 신역이며, 우리 태조 을해년에 비로소 설치했다(驛一, 新驛. 我太祖乙亥, 始置)”고 기록돼 있다. 태조 을해년은 1395년으로, 조선 건국 초기 진보현에 역참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다.
역참은 단순히 말을 갈아타는 장소가 아니었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공문서를 지방에 전달하고, 지방의 보고를 중앙으로 올리는 한편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했다. 오늘날의 우편·교통 기능 일부를 담당하며 국가 행정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뒷받침했다.
산지가 많은 청송 일대에서 역참은 인근 고을을 연결하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진보는 주변 지역과 이어지는 교통로를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지점이다. 다만 당시 신역이 오늘날 진보면의 어느 마을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노선을 담당했는지는 해당 기록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후대 문헌에는 진보신역과 각산역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신역의 설치 기록만으로 두 역이 같은 장소에 있었거나 각산역이 신역을 직접 계승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역의 명칭과 위치, 소속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신역의 설치 기록은 청송 지역의 옛 교통망을 살펴보는 출발점이다. 조선 초기부터 이 지역에 국가 역참이 운영됐다는 사실은 진보가 지방 행정과 지역 간 이동을 연결하는 교통체계에 포함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각산역의 등장과 역도 개편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 청송의 교통·행정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